8' 57"
단편애니메이션
실사촬영 + 디지털 컷아웃 + 드로잉 + 3D CG + 오브제 컷아웃 + 클레이 스톱모션
<작업노트>
시각장애인 영광이는 병원에 있는 누나와 함께 산책하기 위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지도를 만듭니다. 누나는 눈을 감은 채 영광이의 손을 잡고, 영광이가 만든 지도 위를 더듬으면서 가상의 산책을 떠납니다.
"시각장애인에게도 시각적 이미지가 있을까?"
<산책가>는 이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한창 시각예술의 의미와 한계에 대해서 고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대학교 졸업작품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였기에 겸사겸사 이 주제를 파고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이후 약 6개월간 관련 영화, 다큐멘터리, 책, 논문을 수없이 보았지만, 자료조사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촉각예술, 시각장애인 예술가, 선생님 등 관련 전문가 분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생생한 이야기들로 머릿 속 빈 틈이 매워져 가면서, 작품의 윤곽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인터뷰를 하던 서울맹학교의 이존택선생님으로부터 결정적인 제안을 받게 됩니다. 아이들이 마침 졸업여행을 가는데 도우미 선생님이 필요하니, 동행한다면 작품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말씀이었습니다. 저희는 기쁜 마음에 함께 가기로 결정했고, 그 곳에서 주인공 영광이를 만나게 됩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책과 영화로 익혀온 시각장애인의 이미지들이 너무 피상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함께했던 맹학교 아이들은 이후 작품의 검수에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영광이는 그 반에서 가장 시끄럽고 놀기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호기심이 많아 저희의 작업에도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저희는 영광이와 급속도로 친해져 자주 어울리게 되었고, 결국 영광이는 작품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작품의 초점도 '시각장애인'에서 '영광이'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초반에 저희는 시각장애인의 감각세계를 알고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저희와 영광이가 서로의 감수성을 공유하고 영향받으며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의미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미술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경광이는 작품에 나오는 촉지도 직접 만들었습니다. 
지도를 만들기 전, 영광이가 좋아하는 산책로를 오랜 시간 함께 걸으며 서로의 느낌을 공유했습니다.
영광이에게 횡단보도는 방지턱과 점자블록, 음성신호가 가장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차의 엔진 소리로 차종을 맞추는 것이 영광이에게는 재미있는 놀이입니다.
시장은 터널같은 느낌에 다양한 소리와 냄새가 가득하여 영광이가 가장 신나하는 곳이었습니다. 시장 상인들의 성대모사를 하며 즐거워 했습니다. 
지하철은 영광이가 난간 아래에 추락할뻔 했던 아찔한 기억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영광이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눈앞이 캄캄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비시각장애인이 색상적인 비유를 관용적으로 쓰듯이 영광이도 그런 표현을 흔하게 쓰곤 합니다.
함께 나눈 경험을 바탕으로 함께 문방구에서 재료를 고르고, 영광이가 원하는 색의 물감을 찍어주며 지도를 함께 만들었습니다. 부분적으로 도와주긴 했지만, 대부분 영광이의 의도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완성된 지도를 흐뭇한 표정으로 매만지던 영광이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참고로 촉지도는 촬영 이후 센서를 심어 미디어아트 설치작품으로 재탄생되었, 이후 다양한 곳에서 전시되었습니다. 설치작품에 대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별도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기법도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영광이의 감각세계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고민하며 다양한 실험들을 했습니다. 
감각 중에서도 '촉감'의 표현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촉각은 시각처럼 한번에 전체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손으로 만지는 접촉면들이 이어지며 형태를 알게 됩니다. 이것은 어찌보면, 찰나의 이미지들이 이어져서 움직임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과 닮았습니다. 그러한 발상에서 개발한 '찍기애니메이션'으로 촉감을 표현하기로 했습니다.
시장씬의 경우 촉각적 이미지도 좀 더 추상적으로 날아다니게 표현하였습니다. 시장의 물건들은 파는 물건들이니만큼 모든 것을 손으로 만져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냄새와 소리를 통해 영광이의 '촉각적인 기억'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물감의 마블링을 촬영해 겹겹히 쌓고, 사이사이로 찍기애니메이션 소스도 CG 효과로 흐느적거리게 표현하였습니다.
지하철은 영광이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공간입니다. 복잡하고 시끄러운데다가, 과거의 무서웠던 기억도 남아있습니다. 만원 지하철이라도 타게 되면 수 많은 사람들의 옷 사이에 껴있어야 하는 답답함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하철은 특정 감각보다는, 답답함이나 공포감 등의 감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선로에 떨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감을 표현하기 위해, 쿠킹호일과 못, 셀로판지 등을 이용해서 지하철을 상징하는 괴물을 제작했습니다. 괴물의 입에 불을 붙여가며 스톱모션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그 외에도, 모든 장면을 언제나 원점에서 시작했기에 수 많은 실험을 반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촬영, 녹음 합성 등의 과정도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산책가>는 국내외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사사건건'이라는 제목으로 다른 3개의 단편영화와 함께 옴니버스 장편으로 개봉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작업 과정에서 개발된 다양한 애니메이션기법들을 이용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촉각 애니메이션을 제작해보는 워크샵도 국내외에서 여러차례 진행하였습니다.
2018년에는 화면해설이 가미된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제작되어 '배리어프리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고, 영광이는 제 9회 배리어프리 영화제로 위촉되기도 했습니다.

제 9회 배리어프리영화제 홍보대사 위촉 관련 기사(링크)

<산책가>는 studio YOG의 시작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성과는 이후 작품활동을 계속 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작품을 기획하며 스터디한 감각에 대한 자료들과, 제작 과정에서 실험한 애니메이션 기법연구 자료들은 아직까지도 저희에게 많은 영감을 주곤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함께해준 <산책가> 팀에게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Creadit>

각본/감독: 김예영, 김영근
출연: 황영광, 이지영
애니메이션: 김예영, 김영근, 변경민, 송윤경, 김고운
촬영: 박종철, 정철민, 김주호, 김선구, 조형우, 김형석, 김영근, 김예영
음악: 김영근, 이서연
사운드: 김영근, 박동주, 오윤석
제작지원: 서울애니메이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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